[동아일보]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동아일보 이규민 칼럼]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2007. 6. 11
사람이 살면서 지내 온 환경은 인간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인물을 연구할 때는 그가 자란 환경을 중요하게 참고하기 마련이다. 환경이 좋아 큰 인물이 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역경을 극복해 성공한 인물도 있다. ‘어릴 적부터 짐을 나르던 망아지는 준마(駿馬)가 될 수 없다. 우수한 혈통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정성스럽게 키워져야 준마가 된다’는 주장은 전자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우수한 가문에서 태어나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야 큰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교육론과 일치한다. 케네디, 루스벨트 등 미국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좋은 환경 출신이 많다.
반면 “사람은 역경에서 단련된다.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 위대해진 인물을 본 적이 없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우리 속담과 같이 어려운 환경이 인간에게 더 유익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링컨도 역경이 그의 인생에 자양분 같은 역할을 해 줘 위대한 인물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정주영 같은 이도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그냥 평범하고 안락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역경 이기고 큰 인물도 많건만
한국의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자랑처럼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이 ‘고생해 본 사람이 어려운 사람 사정도 더 잘 알고 역경을 통해 정신도 더 성숙했을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에 표를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리라. 참여정부의 특징 중 하나는 역경 속에 살아온 사람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국민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됐다. 역경이 큰 인물을 만든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풍상에 시달리면 심성이 뒤틀리고 성격이 비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국가 속의 ‘남산 위 저 소나무’들은 풍상을 견뎌 내는 생명력의 상징이지만 그 가운데는 척박한 환경을 못 이겨 줄기가 휘고 가지가 꼬부라진 나무들도 있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재목은 대저택의 대들보감이 될 수 없는 법인데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는 찜질방 장작 용도의 비틀린 잡목들이 동량재인 양 격에 맞지 않게 큰 자리에 들어앉음으로써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그렇게 꼬인 성격 가운데 망상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의 정치 지망생 가운데는 이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고 한다(백상창 정신분석 정치학). 이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 이외 모두를 적으로 간주해 본심을 잘 나타내지 않고, 머리가 좋은 편이라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해 모든 현상을 이론화 합리화 계열화하기 좋아하며,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편 가르기식 선동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현 집권세력 인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적어 놓은 글 같지 않은가. 갈등 정치의 동력은 투쟁성이다. 그들의 투쟁성 하나는 세상에 ‘꿀릴 게’ 없을 것이다. 투쟁은 그들의 존재 이유이고 생존 방식이며 살아가는 수단이자, 목적이다. 그들은 야당 정치인, 대기업, 정통 언론 등 투쟁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투쟁꾼들은 싸움 없이 열을 얻는 것보다 싸워서 여덟을 얻는 편이 더 성에 차고 보람도 느껴지는 모양이다.
‘저주의 굿판’인지 ‘미리 먹는 제삿밥’인지 모르지만 요즘 그들끼리 모여 국민과 여타 정치인을 모독하고 헌법기관에 주먹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실망은 더욱 커졌다. 풍상을 겪으면서 얼굴에 한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물들의 막말과 투쟁적 어투, 그리고 저급한 몸가짐이 TV 화면에 비치는 것만으로도 청소년에겐 극히 비교육적이다. 이 정권이 더 망가지지 않고 끝내기를 바라던 대다수 국민에게는 한 줄기 희망조차 포기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 모임의 주인공은 “야당이 집권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포럼의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얼마나 더 망가지고 끝나려는가
“역경을 이겨 낸 사람의 인격은 그에게 권력을 주어 보면 안다”고 말한 사람은 진짜 ‘세계적 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칭한 말)’인 링컨이다. 집권자들의 인격을 알게 되기까지 우리 국민은 너무 많은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지금 역경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은 부디 이 나라 정치지도자를 본받지 말고 링컨 같은 위인을 따르기 바랄 뿐이다.
이규민 대기자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