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제2 유영철’ 막으려면

by 사회병리연구소 posted May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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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제2 유영철’ 막으려면…

백상창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서울신문.2004. 7.21]

 

희대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은 고교 2학년 시절부터 절도 등 각종 죄목으로 감옥을 드나들었다고 한다.그의 성장 과정과 범행 수법을 보면 범행동기도 짐작할 수 있다.

 

유영철의 잔혹한 범행은 그가 걸어온 세월 속에서 축적된 각종 스트레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분노(Unbearable Anger)가 생겨난 결과이다.

정신구조 안에 생긴 극도의 분노가 내부로 향하면 ‘아파트에서 투신하기’‘한강에 몸던지기’같은 자살로 나타나고,외부로 표출되면 살인 등의 극단적 범죄현상을 낳는다.

 

살인을 반복하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시신에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사간증·死姦症) 증상이 나타나 살인과정에서 묘한 병적 쾌감마저 느끼게 된다.

 

유영철이 보인 냉소적 언행,살인을 반복하면서 드러낸 치밀한 태도 등이 그렇다.

그는 하필이면 부자와 여인을 골라서 ‘묻지마’ 살인을 했다.여기에는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투사(投射)와 자기합리화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불행에 빠진 원인을 ‘자기 탓’이 아닌 ‘부자들’과 ‘기득권층’에 있다고 믿는 논리적 비약과 왜곡된 사고를 가지게 됐기 때문인 듯하다.

이 것은 비단 유영철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널리 자리잡고 있는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적 발상과도 관련성이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잘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돈 잘 버는 기업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왜곡된 증오심을 유영철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희대의 살인행각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처방을 찾아야 하는가.

첫번째는 지난 40여년동안 달려온 근대화와 민주화의 부작용을 냉철하게 진단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서양을 급속도로 모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물질중독증과 쾌락주의 문화,전통윤리의 실종으로 인해 모든 상대를 단지 ‘이용할 물건’쯤으로 보는 자기중심주의,모든 분노를 기성세대·기득권층·부자·지배층에 뒤집어 씌우는 각종 운동·투쟁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두번째 처방은 유영철이 썼다는 시(詩)에도 나타났지만 건강한 가정과 따뜻한 모성애를 회복하는 일이다.

범인이 아무리 좌절감을 겪었다 해도 두 차례에 걸쳐 여인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이런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물질적 풍요나 인권 신장의 이면에 부부갈등이 급속히 악성화되고, ‘민주화’이래 이혼율이 급상승하고 있으며, 아버지다운 아버지와 따뜻한 모성애를 주는 어머니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필자는 지난 38년동안 가정법원의 법창에서 보고 있다.

 

세번째 처방은 우리가 어떤 시련과 좌절이 와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 있다.학교 성적이 떨어졌거나, 남보다 작은 아파트에 살거나, 부모가 미천한 삶을 사셨다고 해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낮추거나 무시하지 말 일이다.

 

각자가 태어남을 감사하고,인생의 목표를 세우며,꾸준히 거북이처럼 정진하고,뜻을 이룩하는 길로 노력할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소자들에게는 직업훈련, 규칙지키기 훈련 못지않게 본능적 충동 억제하기, 현실 판단하기, 조화로운 대인관계의 기술, 그리고 사명의식을 갖는 윤리의식의 함양 등 인격 재구성의 교육이 도입되어야 한다.

 

근세사의 와중에 어지럽게 변화를 겪어온 한국인의 민족적 자아동일성을 되찾고,새로운 사회윤리를 세우며, 소외 · 분노 ·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없는 사랑의 풍토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백상창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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