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한풀이 사회' 처방 필요하다

by 사회병리연구소 posted May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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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풀이 사회' 처방 필요하다

[중앙일보.2004.7.19.]

 

부자들만 골라 연거푸 살인행각을 하다가 자신을'전과자'라고 비난하며 도망간 동거녀 (마사지업 종사)를 저주하며 11명의 '마사지'여인을 차례로 골라 살해했던 용의자가 검거돼 사회를 경악케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속 살인범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대개는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이 정신구조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 뒤에는 살아오면서 겪은 연속된 좌절감(Frustration)과 열등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가 있음을 볼 수있다.

 

거기에다 이 범인의 경우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간질 발작증을 나타낸 바도 있다는데, 이런 간질병은 머리 속의 아미그달라(Amygdala)란 곳에서 전기가 발생해 뇌 전체로 퍼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간질환자 중 일부 부류는 자기도 모르게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런 범인의 경우 살인을 반복적으로 행하다 보면 이를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강박심리(Obsession)에 사로잡히게 되고 또한 이런 행위를 통해 묘한 변태적 쾌감마저 느끼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부자들''여인들'에게 복수를 한 사실을 놓고 어떤 혁명투사라도 된 듯한 묘한 영웅심리까지 맛보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정신과의사로서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리는 원인을 찾다가 지난 40여년 한국의 사회병리현상을 탐구해 온 바 있는데, 이번 사건도 결코 범인 개인만의 문제뿐 아니라 그 배경에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변동사(Social Changes)와도 관계가 없지 않다고 본다.

 

지난 40여년간 우리는 '가난의 한(恨)'을 푼다는 이른바 근대화운동에 열중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게 사실이나, 부작용도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즉 지나친 경쟁심과 물질중독증(Fetishism)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 결과 남들에 대한 예의나 법도(法度)를 잃게 되었고, 인정이 메말라 갔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된 '짓밟힌 한(恨)'을 푼다고 민주화운동(Democratization)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자신의 자유와 쾌락을 추구하며 화나는 일은 그 자리에서 푸는 게'민주화'라고 생각하는 왜곡된 현상을 낳고 만 것이다.

 

이 결과 한국 사회 도처에 갈등심리(Conflict)가 판을 치고 부부갈등까지 심화되어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을 사는 한국인은 모성애를 받지 못하고 자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사회 어디에서도 사랑과 공감의식이 실종되어 갔다 하겠다.

 

범인이 부잣집만 골라 살인을 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부자.재벌.기득권자 등에 대한 증오감이 심화되어 온 점과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증오의 철학'에 바탕을 둔 사상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 점 이번 범인이 부자들만 골라 조직적으로 살해한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처방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범인이 나타내고 있는 바, 가진 자에 대한 증오감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를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두 번째 처방은, 우리가 물질중독증에서 벗어나 비록 가난하고 실패했더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일이다. 태어난 의미를 깨닫고 일생의 목표를 세우며 거북이처럼 살아가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을 사랑하며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가정과 건강사회의 형성이 시급할 것이며, 한(恨)풀이가 아닌 한(恨)의 승화, 즉 새로운 민족의 사회윤리가 확립되고 계몽되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백상창 /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