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노무현 정부의 과제 '네가지 맛' 잃은 한국인들

by 사회병리연구소 posted May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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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네가지 맛' 잃은 한국인들

입맛·잠맛·성맛·살맛 없어 … 남 탓 앞서 스스로 돌아봐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민 10명 중 8명이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해 그중 상당수가 종교를 찾거나 알코올에 의존한다고 한다. 카드빚에 몰린 중년남성이 일가족 자살을 시도하고, 생활고를 못 견뎌 아파트에서 자식을 던진 뒤 투신 자살하는 사건마저 있었다. 한국민은 왜 희망을 잃어 가는 것일까.

 

실제 임상적으로 보아도 주부 우울증은 증가 일로에 있다. 이들은 입맛(식욕부진)· 잠맛(불면증)· 성맛(불감증)· 살맛(자살충동) 등 네 가지 맛이 없어진다고 호소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며 남편과 싸우다 쉽사리 가정법원의 이혼창구를 찾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두 번째 나라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이 쌓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공격하여 불안· 공포· 우울· 신체마비· 신경성 두통· 강박심리 등 노이로제 증세를 일으킨다. 또 이 갈등심리가 증오와 투사심리(投射心理)로 변해 밖으로 표출되면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된 범죄 현상으로 연결된다. 노이로제 증상이나 범죄는 동전의 양면처럼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고뇌하는 한국인상(像)을 나타내준다고 할 것이다.

 

한국인이 자기 나름의 인격을 지키지 못하고 쉽사리 퇴행(退行)하고, 미칠 지경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선, 1960년대 이후 상당한 성과를 이룩한 ‘근대화’와 관계가 있다.

‘잘살아 보세’하고 열심히 뛴 것은 좋았으나, 어느덧 한국인들은 ‘물질 중독증’에 걸리게 된 것이다.

 

둘째, 1980년대부터 급속도로 추진된 ‘민주화’의 부작용과도 관계가 있다.

민주화 운동의 피나는 투쟁은 상당한 정치발전을 가져온 계기를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권위를 제거한 점, 권리는 주장하고 의무는 소홀히 한 점, 그리고 제몫을 찾겠다는 지나친 투쟁 속에서 노사갈등과 지역갈등, 그리고 세대갈등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2대 무역대국이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이 되었으나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근대화 세력’과 대기업이 무너지고 경제침체와 청년실업, 서민층의 고통이 심해지며 집단적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세 번째 이유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래 증폭되는 남남(南南)갈등과 관계가 있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정체와 반인민적 정치행태는 외면한 채 무조 건 ‘민족공조’니 ‘외세배격’ 등을 외쳐대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일에 열중하며 결국 ‘집단적 자학증(自虐症)’과 ‘희망 상실증’을 낳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급속한 해체현상(解體現象)을 정지시키고, 다시 활기를 찾게 해 희망의 사회를 만드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 노무현 정부가 새로운 갈 길을 제시하며 리더십을 확립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바라는 공통점을 발굴 수렴하고, 모두가 단합하며 가는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펴야 한다.

 

둘째로 남녀투쟁의 장(場)으로 치달으며 붕괴되는 가정을 재생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한국인 개개인의 인격성숙 훈련이다.

남을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책임의식을 높이고, 성급한 행동화(acting out)보다 오래 참고 신중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자기 권리나 눈앞의 이익이 아닌, 민족을 향한 사명감과 ‘책임의 삶’이 요청된다.

 

백상창 /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의학박사

조선일보  2004.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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